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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식이 삼촌 3.15 부정 선거 배경

by opensoop 2024. 5. 15.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민주주의적 헌법과 제도를 갖추고 있었지만, 실제 권력 행사와 제도 운영은 민주주의와 거리가 있었습니다. 1952년 5월,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상황에서 '부산정치파동'이 일어났고,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습니다. 1954년 11월에는 초대대통령에 한해 중임제한을 적용하지 않는 개헌이 있었습니다.



1956년 5월, 제3대 대통령 선거와 제4대 부통령 선거는 한국 민주주의의 활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민주당은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로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에 도전했고, 진보당의 조봉암은 평화통일론을 주장하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민주당 후보 신익희의 갑작스러운 사망에도 불구하고, 선거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이승만 후보는 504만여 표를 얻었지만, 진보당의 조봉암은 216만여 표를 얻어 선전했습니다. 무효표도 185만여 표나 나왔습니다.



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 장면이 자유당 후보 이기붕을 누르고 당선되었습니다. 주한미국대사관은 "아시아에서 야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이후 정치 상황은 자유당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었고, 1960년 선거를 앞두고 자유당의 정권 재창출 가능성은 더욱 좁아졌습니다.



1950년대 선거는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이정표였습니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려는 노력과 야당의 선전은 한국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시기를 되돌아보며, 민주주의의 가치와 국민의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