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먹은 '서가의 으뜸'이라고 할 정도로 선비들에게 귀중한 보물이었습니다. 특히 30년 된 소나무를 가지부터 뿌리까지 태워야 한 개를 만들 수 있는 송연먹은 보물 중의 보물이었죠. 삼국시대부터 생산되어 외국 사신들의 선물로 이용될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 먹이었으나,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그 명맥이 끊겼습니다. 하지만 이 명맥을 복원한 이가 있으니, 바로 국내 유일의 전통 먹 장인 한상묵 씨입니다.
묵운당 청먹 청송연[순송연먹] 5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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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묵 씨는 원래 이모부에게서 카본을 사용하는 현대 먹을 배웠습니다. 먹 공장을 운영하던 중 계약서를 잘못 써서 인생의 고비를 맞기도 했지만, 그때 인연이 닿은 송연먹 덕분에 재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필기도구가 대체된 요즘, 송연먹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한상묵 씨는 여전히 전통 먹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제자도 없이 외로운 길을 걸으면서도 그가 꿋꿋이 전통 먹을 지켜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5년 동안 묵묵히 70여 년 전에 단절된 전통방식의 송연먹을 제작·개발하고 있는 한상묵 씨는 충북 음성읍 초천리 1리에서 '취묵향 공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영등포고와 한경대학 화공과를 졸업하고, 1986년 수원에서 먹물 공장을 운영하는 이모부 김효성 씨의 권유로 먹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먹물 공장에서 몇 년간 이모부로부터 먹 제조법을 정식으로 배운 후 독립한 한상묵 씨는 화성시 동탄면에서 먹 제작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공장 부지가 지역개발로 없어지게 되자, 소나무가 많고 해발이 높아 과거 먹이 활발하게 만들어졌던 음성에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먹에 대해 연구하고 제조하기 시작했죠.
취묵향 공방에는 작업실, 건조실, 반죽실, 야외 가마터 등이 마련되어 있어 먹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작업이 가능하도록 꾸며져 있습니다. 한상묵 씨가 만드는 송연먹은 20년 이상 된 소나무 송진이 모여 있는 관솔 부분을 가마에서 열흘을 태운 후 하루를 식힌 다음, 가마에 들어가 그을음을 모아 한 달 내외로 건조시키고 공기가 잘 통하는 그늘에서 2차 건조과정을 거칩니다. 이후 아교와 향료를 섞어 반죽하고, 겉과 속이 균일하게 마를 수 있도록 뒤집어주는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송연먹이 완성됩니다.
이렇게 몇 톤에 달하는 소나무를 태워 얻는 그을음으로 송연먹은 1년에 12개 정도밖에 만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송연먹 하나 가격이 100만 원 이상의 고가로, 80%는 문화재청 전통문화사업에 납품되고 있습니다.
한상묵 씨는 먹으로 만든 각양각색의 작품 200여 점을 10년 전부터 설성문화제, 음성품바축제 행사 때 전시하고 있으며, 10월부터 3월까지 먹 작업을 마치면 봉사활동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또한 송연먹으로 문화재청과 함께 조선왕조실록을 먹으로 인쇄하는 작업과 해인사의 의뢰를 받아 팔만대장경을 인경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는 "전국에 먹을 만들고 있는 사람은 몇 명 있지만, 전통방식의 송연먹을 제작하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라며 "먹은 글을 쓰고 인쇄하는 데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소장가치가 있는 상품으로 개발해 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전통 먹 계승발전을 이어갈 후학 양성을 해보고 싶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어 안타깝다"며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절박감과 전통공예품인 먹을 연구하고 계승발전한다는 자긍심으로 지금도 품질과 가격에 싸우면서 운명적으로 묵장으로 살아가고 있고, 또 끝까지 이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한상묵 씨는 2006년 경기도 명장, 2014년 고용노동부 숙련기술 전수사로 인정받았으며, 전통먹으로 2020년 대한인쇄문화협회 인쇄문화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가 만드는 송연먹은 서울대 규장각, 불교문화연구소, 국립중앙과학관, KIST에서 품질 인증을 받은 바 있습니다.
전통 송연먹의 명맥을 잇는 국내 유일의 장인, 한상묵 씨. 그의 노력과 헌신 덕분에 우리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전통 먹을 보존하고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걱정하는 것처럼, 전통 먹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서는 후학 양성과 대중의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한상묵 씨의 노력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전통 먹의 가치를 알리고 보존하는 데 힘을 보탠다면, 전통 먹의 명맥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 취묵향공방(송연먹)
충북 음성군 음성읍 초천로174번길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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